Tuesday, April 24, 2012

'광양 재첩'






재첩의 색깔은 제각각이다. 섬진강 재첩은 짙은 색이 많은 편이지만, 이 색깔만로는 산지를 구별하기 어렵다.


'광양 재첩'이기도 하지만

재첩 앞에 '하동'이라는 지명을 붙이면 서운해할 사람들이 있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하동과 마주보고 있는 전남 광양의 사람들이다. 이곳에서도 하동 사람들과 함께 섬진강에서 재첩을 캔다. 광양에 재첩국 식당도 많으며 광양시에서도 지역 특산물로 육성하고 있다. 그런데 '광양 재첩'은 귀에 설다. 섬진강 때문에 생긴 일이다. 강은 지역을 가르기도 하지만, 이동과 수송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예부터 광양의 경제생활권은 동서로 나뉘어 있었다. 섬진강과 가까운 진월면, 다압면, 진상면, 옥곡면을 '외면'이라 하는데, 외면 사람들은 배로 섬진강을 건너 하동읍의 시장을 이용하였다. 광양읍, 옥룡면, 봉강면, 골약면은 '내면'이라 하였는데, 내면 사람들은 육로를 이용하여 순천의 시장을 다녔다. 그러니 섬진강에서 재첩을 캔 광양 사람들은 하동 시장에 재첩을 내었고, 그래서 광양 쪽에서 캔 재첩도 '하동 재첩'이란 이름으로 팔려나갔으며, 따라서 섬진강 재첩에 하동이라는 지명이 자연스럽게 따라붙게 된 것이다. 하동에서 '광양 재첩'이라 해야 하지 않느냐며 말을 꺼내면, 매실을 또 다른 예로 든다. 하동의 매실 재배 면적도 상당하며 그 역사도 오래되었는데 '광양 매실'만 그 이름을 얻었다는 것이다. 하동과 광양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형제처럼 지내는지라 그 이름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섬진강 것도 그 맛이 나뉜다

재첩은 봄과 가을 두 차례의 제철이 있다. 4~6월과 9~11월이다. 이 중에 봄에 나는 재첩이 맛있다. 5~6월이 산란기인데, 이때에 살이 차기 때문이다. 여름에도 재첩을 잡을 수 있으나 이때의 것은 살이 적고 맛이 흐리다. 여름 재첩은 봄과 가을 재첩의 2배 양을 넣고 끓여야 먹을 만한 맛이 우러난다고 한다. 섬진강에서 거두는 재첩은 대부분 1년생이다. 가끔 2년생 이상의 것도 보이지만, 다 커봤자 패각 길이가 3센티미터 정도로 여느 조개에 비해 무척 작다. 그러나 그 작은 몸에도 진한 국물이 나온다. 한 말의 재첩으로 한 말의 재첩국물을 내면 그 진한 감칠맛이 황홀할 지경이다. 그래서 국으로 먹을 때는 물을 웬만큼 탄다. 섬진강의 재첩이라도 강의 구역에 따라 그 맛이 다르다. 경전선 기차가 지나는 철교를 기준으로 하여 그 위와 아래의 재첩 맛을 나눈다. 철교에서 하류 쪽 재첩은 그 국물 맛이 진하다. 바닷물의 영향이다. 밀물이면 바닷물이 철교까지 올라와 재첩에 바다의 냄새를 담는 것이다. 그 국물의 색깔도 약간 푸르스름하다. 철교 위 상류에서 잡히는 재첩은 그 살 맛이 은근하다. 국물의 색깔은 회색이다.

금모래밭은 사라지고

재첩 잡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사람이 강에 들어가 거렁개(긁개의 일종이다. 거렁이라고도 한다.)로 긁는 방법과, 배에 거렁개를 달아 강바닥을 긁는 방법이다. 물에 사람이 들어가 강바닥을 긁는 일은 날씨가 따뜻해지는 5월 중순 이후에 한다. 배로 강바닥을 긁는 방법은 1990년대에 들어서야 생긴 일이다. 재첩의 양이 줄어 강 한복판의 바닥을 긁을 수밖에 없어 생긴 일이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강의 모래 채취 때문에 생긴 일인 것으로도 보인다. 섬진강의 강변에는 고운 모래가 길게 쌓여 있었는데 1970~80년대 이를 죄다 퍼다가 건설용으로 쓰는 바람에 수심이 깊어졌고, 따라서 배를 이용하여 강바닥을 긁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동에서 재첩을 가장 많이 잡는 곳은 고전면 목도리이다. 이 마을 앞의 강도 금모래밭을 잃었다. 배로 강바닥을 긁어 잡은 재첩으로 웬만큼의 소득을 올리고 있는 이 마을 사람들도 그 옛날 금모래밭에 대한 아쉬움을 입에 달고 있다. "그 모래밭만 있었더라면 지금 이 마을에 관광객으로 넘쳤을 것인데."


배에서 거렁개를 올리고 있다. 강바닥을 긁어 올리면 재첩 외 자잘한 돌도 같이 올라온다. 이는 다시 강에 버린다.




광양 쪽에서 찍은 것이다. 할머니 뒤로 하동과 광양을 잇는 다리가 보인다. 할머니는 잠시의 작업으로 한 주전자의 재첩을 캤다.


갱조개국 아지매

옛날에 하동에는 갱조개국 아지매들이 있었다. 강변에서 재첩을 캐다가 밤새 재첩국을 끓여 새벽부터 이를 동이에 담아 이고 팔러 다녔다. "갱조개국 사이소" 하고 외치고 다녀 갱조개국 아지매라 불렀다. 경전선 기차를 타고 진주까지 나가 팔았다. 1950년대부터 이 갱조개국 아지매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1990년대까지 4명의 할머니가 남아 이 일을 하였었다. 그때에는 진주까지는 나가지 않고 새벽에 수레에 동이를 싣고 하동읍내를 돈 후 날이 밝으면 하동시외버스터미널 귀퉁이에 좌판을 벌여 재첩국을 팔았다. 2012년 현재 이들 할머니는 은퇴하고 그 할머니들 중 한 분의 딸이 터미널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딸이라 하지만 이 갱조개국 아지매의 나이도 많이 들어 갱조개국 아지매 이야기는 곧 '전설'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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